숭례문 살아 숨 쉬다.
국민의 정성+장인의 희생= 복구(復舊)
崇禮門이 돌아왔다.
5년 3개월의 시간 속에서 다시 역사(歷史)로 살아 숨 쉰다.
2008년 2월 10일, 오후8시40분경 방화범 ‘채종기’의 어처구니없는 범죄로 불타기 시작하여 목조건물 일부와 석축기반을 남기고 2층 누각이 전소(全燒) 되어
600년 역사가 현실 속에서 소실 된듯하여 이 땅의 백성이 아파했고, 슬퍼 던 기억들이 국민의 정성과 장인의 희생(犧牲)으로 복구 되어 새로이 1000년을 기약(期約)했다.
1962년 국보 제1호로 제정(制定)된 숭례문(남대문이라고도 함)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의 정문이다.
태조5년(1396년)에 창건(創建)되어 600년간 조상의 ‘얼’과 경제, 문화와 민초(民草)들의
애환(哀歡)과 삶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역사의 지킴이였다.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의 얼굴이요, 자존감(自尊感)이 서려 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이다.
숭례문은 전형적인 다포형식의 구조로 중앙의 홍예문(虹霓門)이 있는 기반위에 정면5칸, 측면2칸의 중충건물이다.
홍예문에는 철이 덧씌워진 큰문이 양쪽으로 달려있다.
기단위로는 얕은 담을 두르고 좌,우 양쪽에는 작은 문과 계단이 있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다.
특히, 숭례문의 현판(懸板)은 세로로 만들어져 있다.
이유인적 마주보고 있는 관악산의 화기(火氣)에 숭례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풍수지리학에 의한 조상의 정성(精誠)이 담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이번 화재로 손상된 현판은 원래부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중요무형문화제 각자장(刻字匠)인 ‘오옥진’씨와 단청장(丹靑匠)인 ‘홍창원’씨의 수고로움으로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되찾았다고 한다.
아울러, 복구에 참가한 장인들(대목수: 신응수)과 문화재청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없어진 동쪽 성곽53m와 서쪽16m 구각이 원형대로 복구 되었으며 동쪽 계단은 폭이 5m(종전2.9m)로 늘어났고 발굴조사와 옛 자료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지반은 종전보다 30~50cm 낮아 졌으며 1층 마루는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꿨다.
또한, 화재 前 일반제품이었던 지붕기와는 전통기와 기법으로 구워진 소재로
대체 되었고, 용마루 길이도 16.6m(종전15.9m)로 늘어났다.
잡상(雜像)은 1층이 7개로 하나 줄었으며, 2층은 9개로 같게 복구되었다.
화재예방 대책으로 12개의 C.C,TV와 140개의 스프링클러를 달았다고 한다.
마침내 각고의 노력으로 5월4일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다시금 국민 앞에
우뚝 섰다.
이날, 숭례문복구 기념식에 박근혜대통령과 최고기량의 장인들과 학계, 원로전문가, 관계기관 등이 모여 국민이 주인(主人)인 숭례문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전해야 할 이유(理由)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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