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巨山)은 가고 민주(民主)는 울고 있다.
개그로 승화된 소통, 불통은 없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冥福을 기리며……
눈이 내린다.
하늘이 ‘우째’ 우울한가 보다 ……
산자(者)의 哀悼가 산하를 뒤덮는다.
2015년 11월 26일 14:00시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고 김영삼 대통령의 영결식이 21발의 조총의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국가장으로 거행 되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 친지, 동지들, 장례위원, 해외조문사절과 정, 관계, 언론계, 문화계 등 주요 인사들이 그분과 이별을 눈물로 함께 했다
그동안 서울대 병원과 전국각지에서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 수만 명의 조문객이 추모했으며, 영결식장에는 1만 명의 조문객이 YS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소탈한 인간성 때문에 그와 함께 시간을 간직한 이 시대의 민주시민들은 03의 추억을 토닥이며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그를 보내야만했다
돌이켜보면
YS는 운명적 민주투사의 氣質을 타고났나보다.
‘26세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이후
최다선(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개혁, 개방정책, 민주와 화합을 성숙시킨 민족의 지도자였다.
군정종식(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역사바로세우기 (조선총독부 건물해체), 외환위기(IMF)등 대한민국 현대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기며 민주투사로서, 의회주의자 역할까지 두루 涉獵한 정치적 큰 산 이였다.
특히, 서슬 퍼런 시절 험악한 군사독재를 타파하고 세계 속 KOREA로 나아가는 과정까지 정치적 풍랑을 몸소 겪고 他派하신 분이다.
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 전두환 대통령은 YS를 자택 연금시키자
83년 YS는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투쟁결과, 그날이 오자
YS는 95년 구시대의 잘못을 깨끗이 청산하고 법과 정의가 바로서는 새 시대를 열어 5.18특별을 제정하여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켜 하나회를 척결했다.
나아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여 지하경제와 검은 돈의 출구를 압도적으로 통제하여 국가재정을 든든히 하는 기초를 닦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복지기반형성에 큰 뒷받침이 되었다.
조선총독부건물해체등 일련의 친일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강력히 추진하기도 했다.
한편, 영광은 짧고 고난과 역경은 길었다.
외환위기로 국가가 휘청거리고 아들 현철씨가 법정에 서자 YS는 우울하며 책임의식으로 반성과 후회의 시간을 맛보기도 한다.
분명, 공과 과가 얼룩졌지만 그분은 가장 민주적이었고 개그로 승화된 소통은 있었지만 꽉 막힌 不通은 없었다.
그의 어록 중에서 가장 빛나는 “닭의 목(모가지)을 아무리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온다”(이로 인해 1979년 의원직제명당함),
“나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있겠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나의 양심과 마음은 전두환이가 못 뺐어”(서울의 봄 직후 가택연금당함) 등의 선이 굵은 투사의 매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YS타계로 많은 국민은 다시금 민주화의 의미와 독선(독재)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반민주적이고, 확실히 표현할 수 있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논란, 독립 언론(인터넷신문)제재, 비판과 풍자가 사라진 살벌한 정치현실, 노동법개정, 농촌쌀값 문제등 문제가 문제화 되고 있다.
민주시민들은 이런 사실을 방치하는 야당에게 묻는다.
이 땅에 야당이 있는가?
야당의 존재가치가 무엇인가?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는 누가 지킬 것인가?
YS가 오늘 떠나면서 모두에게 話頭를 던진다.
“나와 DJ가 목숨을 걸고 얻어내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과연 너희들은 무엇을 했는가?”
“내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한 역사바로세우기가 이대로 후퇴하여 7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것을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YS는 안식과 영면의 길로 떠났다.
그는 살아생전에도 민주화의 거목이었다.
YS는 하늘나라에서도 이 땅에 민주화를 걱정하신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YS가 떠나는 마지막 현장에 건강상의 문제로 不參했다.
끝으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명복을 빌며 기도드린다.
“YS여, DJ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부 전해주시고 우리를 記憶하소서!”